할 일을 미루게 되는 이유는 게으름보다 해야 할 일이 막연하고 시작하기 불편해서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연말까지 미루지 않으려면 의욕을 끌어올리기보다 목록의 모양을 바꾸는 쪽이 현실적이에요. 이 글에서는 쌓인 목록을 줄이는 순서, 일을 쪼개는 방법, 시작 조건을 미리 정해 두는 방법을 차례로 살펴볼게요.
올해가 석 달쯤 남은 지금은 미뤄 둔 일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는 시기예요. 연말에 닫히는 행정 일정은 올해가 석 달 남았을 때 챙길 10가지에, 목표 자체를 다시 보는 방법은 하반기 목표 재점검 체크리스트에 정리해 두었어요. 여기서는 그 일들을 실제로 해 나가는 관리 방식에 집중해요.
📝 미루는 이유부터 가려 보세요
연구에서 말하는 미루기는 단순히 늦게 하는 일이 아니에요. 심리학자 Piers Steel은 2007년 메타분석 논문에서 미루기를 하려던 일을 자발적으로 늦추면서, 늦추면 오히려 손해일 것을 알고 있는 상태로 정의했어요. 일정이 밀려서 어쩔 수 없이 못 한 일은 여기에 들어가지 않아요. 같은 논문은 일이 본래 불쾌할수록 사람들이 그 일을 피하는 경향이 크다고 정리했어요.
Sirois와 Pychyl은 2013년 논문에서 미루기를 불편한 감정을 당장 피하려는 선택으로 설명했어요. 어려운 보고서나 연락하기 부담스러운 전화처럼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을 피하면 지금 기분은 나아지지만, 해야 할 일은 그대로 남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목록을 보면서 미룬 일마다 이유를 한 줄로 적어 보면 도움이 돼요. 시간이 없는 건지, 방법을 모르는 건지, 하기 싫은 건지에 따라 처방이 달라져요. 시간이 없다면 일정에서 자리를 만들고, 방법을 모른다면 첫 질문 하나를 찾고, 하기 싫다면 아래에서 설명할 쪼개기와 시작 조건을 써요.

한 줄에 한 동작만 적어요
목록에 ‘세금 정리’, ‘방 정리’, ‘보고서’처럼 적어 두면 보기만 해도 부담이 커져요. 이런 항목은 일이 아니라 일의 이름에 가까워서 첫 동작이 보이지 않아요. 같은 항목을 바로 손이 가는 동작 하나로 바꿔 적어 보세요. ‘보고서’ 대신 ‘보고서 파일을 열고 제목 세 줄 쓰기’, ‘방 정리’ 대신 ‘책상 위 종이만 한 상자에 담기’처럼요.
동작 하나의 기준은 시작하기 전에 끝이 그려지는지예요. 끝이 그려지지 않으면 아직 덩어리가 큰 거라서, 한 번 더 쪼개요. 처음에는 목록이 길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줄 하나하나가 가벼워지면 어떤 줄부터 해도 되니까 시작이 쉬워져요.
쪼갠 동작은 오늘 할 수 있는 것과 날짜가 필요한 것으로 나누어 두세요. 날짜가 필요한 일을 오늘 목록에 섞어 두면 매일 못 끝낸 항목으로 남아서 목록이 무겁게 느껴져요. 날짜가 있는 일은 달력이나 알림 앱에 옮기고, 목록에는 오늘 손댈 수 있는 것만 남겨요.
걸리는 시간은 넉넉하게 잡아요
할 일을 미루다 마감이 닥치는 데는 시간 예측이 낙관적이라는 이유도 있어요. Buehler, Griffin, Ross가 1994년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일의 완료 시간을 실제보다 짧게 예상하는 경향이 확인됐어요. 이를 계획 오류라고 불러요. 연구에서는 남의 일을 예측할 때보다 자기 일을 예측할 때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해요.
그래서 예상 시간을 적을 때는 처음 떠오른 시간에 여유를 얹는 편이 안전해요. 몇 배를 더해야 한다는 정해진 공식은 없지만, 과거에 비슷한 일이 실제로 얼마나 걸렸는지 떠올려 보면 기준이 생겨요. 기억이 흐릿하다면 이번 일을 하면서 시작과 끝 시각만 적어 두세요. 다음에 쓸 수 있는 기록이 돼요.
하루 계획도 같은 원리로 잡아요. 쓸 수 있는 시간을 모두 채워서 계획하면 한 가지만 길어져도 나머지가 줄줄이 밀려요. 하루의 일부는 비워 두고, 밀린 일이나 갑자기 생긴 일이 들어올 자리를 남겨 두세요.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지 미리 정해요
쪼개 놓은 일도 ‘시간 날 때 해야지’라고 두면 시작 순간을 계속 놓쳐요. 이럴 때 쓸 수 있는 방법이 ‘만약 ~하면, ~하겠다’는 형태의 계획이에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실행 의도라고 불러요. Gollwitzer와 Sheeran은 2006년 메타분석에서 이런 if-then 계획이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고 정리했고, 특히 행동을 시작하지 못하는 문제에서 효과가 컸다고 보고했어요.
2024년에 발표된 후속 메타분석에서도 계획의 형식이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조건과 행동을 이어 붙인 형식이거나, 그 목표를 이루려는 동기가 높거나, 계획을 반복해서 떠올린 경우에 효과가 더 컸어요. 다만 이런 연구는 평균적인 경향을 보여 줄 뿐이라서, 모든 사람에게 같은 효과를 보장하지는 않아요.
일상에서는 이렇게 써 볼 수 있어요. ‘저녁 식사 설거지를 마치면 식탁에서 세금 서류 봉투를 열어 본다’, ‘출근해서 자리에 앉으면 메일 앱을 열기 전에 오늘 첫 일 하나를 시작한다’처럼 이미 하고 있는 행동 바로 뒤에 새 일을 붙이는 거예요. 시각, 장소, 첫 동작이 한 문장에 들어 있으면 그 순간에 고민할 일이 줄어요.

오늘 할 일은 세 가지만 골라요
목록이 아무리 정리돼 있어도 하루에 모두 하려고 하면 끝에는 못 한 일만 남아요. 하루 단위로는 꼭 끝낼 일 하나, 가능하면 할 일 둘 정도로 줄여 보세요. 개수는 정해진 정답이 아니라 예시이니 일의 크기에 따라 조정하면 돼요. 중요한 건 하루가 끝났을 때 ‘한 일’이 눈에 보이게 만드는 거예요.
세 가지를 고를 때는 마감이 가까운 일, 마감은 없지만 미룰수록 부담이 커지는 일, 5분이면 끝나는 작은 일을 하나씩 섞어 보세요. 작은 일은 끝낸 느낌을 빨리 주고, 미룰수록 부담이 커지는 일은 목록에서 가장 오래 남은 항목을 고르면 돼요. 이렇게 하면 급한 일만 처리하다 중요한 일이 계속 뒤로 밀리는 것도 줄일 수 있어요.
가장 하기 싫은 일을 아침에 먼저 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지만, 사람마다 집중이 잘되는 시간이 달라요. 하루 중 집중이 잘되는 시간대를 알고 있다면 그 시간에 부담스러운 일을 두고, 모르겠다면 한 주 동안 시간대별로 가볍게 기록해 보세요.
못 한 날의 처리 방식도 정해 둬요
계획대로 안 되는 날은 반드시 와요. 그때 목록을 통째로 지우고 새로 시작하면 미루던 일이 다시 쌓이고, 자책하는 마음이 드는 날이 늘면 다음 날 시작이 더 어려워져요. 앞서 본 Sirois와 Pychyl의 설명대로 미루기가 불편한 감정을 피하는 선택이라면, 못 한 날의 기분을 가볍게 다루는 것도 관리의 일부예요.
못 한 일은 이유만 한 줄 적고 내일 목록 맨 위가 아니라 날짜를 다시 정해서 옮기세요. 같은 일이 세 번 넘게 밀렸다면 일이 아직 너무 크거나 지금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있어요. 더 쪼개거나, 아예 목록에서 빼도 되는지 따져 보세요. 목록에서 빼는 일도 결정이고, 그 결정을 하고 나면 남은 일이 더 선명해져요.
일주일에 한 번, 같은 요일과 시간에 10분 정도 목록을 훑어보는 시간을 만들면 좋아요. 끝낸 일을 지우고, 날짜가 지난 항목을 옮기고, 다음 주에 필요한 일을 쪼개 두면 돼요. 이 시간도 앞에서 말한 if-then 형식으로 ‘일요일 저녁 식사 뒤에 식탁에서 목록을 연다’처럼 정해 두면 놓치기 어려워요.
피로가 쌓여서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히는 시기라면 관리법보다 쉬는 시간 확보가 먼저일 수 있어요. 잠과 움직임, 휴식을 챙기는 방법은 번아웃 없이 연말까지 버티는 체력 관리 5가지에서 살펴볼 수 있어요. 미루는 일이 오래 이어지면서 일상이 크게 흔들린다면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전문가와 상담하는 방법도 있어요.

한눈에 정리: 미룬 이유를 한 줄로 적고, 일을 한 동작으로 쪼개고, 시간은 여유 있게 잡고, ‘~하면 ~한다’로 시작 조건을 정해요. 하루 목록은 세 가지 안팎으로 줄이고, 주 1회 10분 정리로 밀린 일을 다시 배치해요.
미루는 습관은 한 번에 고쳐지는 성격 문제가 아니라, 목록과 시작 조건을 손봐서 줄여 가는 기술에 가까워요. 이번 주에는 가장 오래 미룬 일 하나만 골라 첫 동작과 시작 조건을 한 문장으로 적어 보세요.
참고한 자료
- Steel (2007), The nature of procrastination, Psychological Bulletin
- Sirois & Pychyl (2013), Procrastination and the priority of short-term mood regulation
- Buehler, Griffin & Ross (1994), Exploring the planning fallacy
- Gollwitzer & Sheeran (2006), Implementation intentions and goal achievement
- The when and how of planning: Meta-analysis of the scope and components of implementation intentions (2024)









